본문으로 건너뛰기

08. 효율은 언제 폭력이 되는가

문제 제기: 줄어든 숫자와 길어진 밤

물류센터의 대시보드에는 축하할 만한 숫자가 떠 있다. 주문 처리 시간 18퍼센트 감소, 피킹 동선 23퍼센트 단축, 시간당 처리 건수 최고 기록. 회의실에서는 박수가 나온다. 알고리즘은 작업자마다 다음에 집어야 할 물건과 이동 경로를 계산하고, 손목 단말기는 쉬지 않고 진동한다.

그날 밤 현장 관리자는 노동자들의 휴게 기록을 확인한다. 휴게 시간은 줄었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복귀하는 데 걸린 시간은 생산성 하락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시스템은 누구를 벌주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단지 지연을 비용으로 계산했을 뿐이다. 그런데 계산이 촘촘해질수록 사람의 몸은 시스템의 오차 항목처럼 취급되기 시작한다.

효율은 좋은 말이다. 낭비를 줄이고, 기다림을 줄이고,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효율이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있다. 시간을 줄였다는 말은 누구의 시간을 줄였는가를 숨긴다. 비용을 절감했다는 말은 누가 그 비용을 몸과 불안으로 지불했는지를 지운다.

철학적 논점: 수단의 최적화가 목적을 삼켜 버릴 때

효율은 본래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측정하기 쉬운 수단이 목표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처리량, 클릭률, 응답 속도, 모델의 정확도는 숫자로 표현하기 쉽다. 반면 존엄, 자율성, 신뢰, 회복할 시간은 대시보드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면 시스템은 눈에 잘 띄는 것만 개선한다.

철학은 여기서 최적화의 질문을 뒤집는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처리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빠르게 처리하지 말아야 할까. 모든 지연은 낭비가 아니다. 상담원이 사용자의 말을 끝까지 듣는 시간, 의사가 예외적인 증상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 개발자가 불안한 로그 하나를 따라가는 시간은 표면적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사고를 막는 완충지대다.

자동화 시스템은 평균을 좋아한다. 평균적인 사용자, 평균적인 작업 속도, 평균적인 위험을 기준으로 규칙을 만든다. 그러나 삶은 평균이 아니라 편차 속에서 무너진다. 임신한 노동자, 언어가 서툰 고객, 오래된 기기를 쓰는 사용자, 한 번의 실수로 생계가 흔들리는 사람은 평균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비용을 낸다.

공학의 장면: 고객센터의 30초 규칙

한 고객센터는 상담원 평가를 자동화하기로 했다. 통화 후 시스템은 상담 시간을 분석하고, 고객이 침묵한 구간과 상담원이 사용한 문장을 점수화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평균 통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전화를 처리하는 것. 처음에는 성과가 좋아 보였다. 대기열이 짧아졌고, 보고서에는 효율 향상이라는 문구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상담원들은 어려운 고객에게 전화를 넘기기 시작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고객, 환불 규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령자, 이미 여러 번 같은 설명을 들은 고객은 통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담원은 그들을 충분히 돕고 싶었지만, 오래 붙들고 있으면 개인 점수가 떨어졌다. 결국 시스템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가장 빨리 끊어 내는 행동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었다.

이 문제를 발견한 팀은 모델을 다시 학습시키는 것부터 생각했다. 하지만 핵심은 예측 성능이 아니었다. 어떤 행동을 좋은 상담으로 정의했는지가 문제였다. 통화 시간을 낮추는 대신 첫 통화 해결률과 재문의율을 함께 보자고 제안했고, 상담원이 예외 사유를 기록할 수 있는 항목과 평가 이의 제기 절차를 만들었다. 숫자를 더 많이 추가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하나의 숫자가 사람의 행동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구조를 바꿀 수는 있었다.

반론과 긴장: 비효율을 낭만화하지 않기

효율에 대한 비판은 때때로 반대편의 함정에 빠진다. 느리면 인간적이고, 자동화하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식의 낭만이다. 실제로 낭비되는 자원은 누군가의 삶을 압박한다. 병원 접수의 긴 대기, 행정 서류의 반복 입력,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복잡한 절차는 이미 특정 사람들에게 폭력이다. 효율을 높이는 기술은 그런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효율이냐 인간성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효율을 정의하고, 그 결과를 누구와 나누는가의 문제다. 좋은 시스템은 처리량만 늘리지 않는다. 사용자가 상황을 설명할 여지를 남기고, 예외를 예외로 다룰 수 있게 하며, 측정되지 않는 손실을 드러낸다. 빠른 길을 제공하되, 그 길을 강제로 만들지 않는다.

공학자는 최적화 함수에 무엇을 넣을지 결정하는 순간 정치적 행위를 한다. 가중치 하나, 타임아웃 하나, 재시도 횟수 하나가 사람의 경험을 바꾼다. 그러니 성능 지표 옆에는 늘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 숫자가 내려간 뒤, 누군가의 밤은 길어지지 않았는가. 이 그래프의 상승을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노동은 무엇인가.

마무리 질문

당신의 시스템은 무엇을 낭비로 분류하는가. 기다림과 망설임, 설명과 돌봄, 점검과 휴식을 모두 제거해야 할 마찰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더 빠른 시스템을 만드는 일과,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정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